함부르크· 하펜비맞은사람비회원· 2달 전· 봤어요 1명 · 공감 0 · 댓글 0
함부르크 비는 진짜 우산으로 해결되는 비가 아니더라. 아침엔 괜찮아 보여서 얇은 자켓만 입고 나갔는데, 항구 쪽에서 갑자기 바람 섞인 비가 와서 학교 도착 전에 이미 끝남. 기차 타고 앉았는데 바지 젖고 머리 망하고, 오늘 발표도 망할 것 같아서 표정이 진짜 안 좋았나 봄. 옆에 앉은 사람이 조용히 휴지를 건네줌. 처음엔 독일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 폰 알림 보고 한국어로 “괜찮아요?” 라고 물어봄. 그 한마디 듣자마자 이상하게 울컥함. 내가 오늘 발표 있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그럼 일단 머리부터 살립시다” 하면서 가방에서 작은 빗이랑 휴지를 꺼내줌. 진짜 너무 민망했는데 그 사람이 계속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있어서 나도 조금 웃음이 나왔음. 몇 정거장 같이 가면서 함부르크 비 욕하고, 방수자켓 얘기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우산은 여기서 장식품이라는 결론까지 냄. 내릴 때 그 사람이 작은 접이식 우산을 접어서 그냥 내 손에 쥐여줌. 자기는 집 가깝다고. “발표 끝나고 돌려줘도 돼요.” 그러면서 메일 주소를 적어줬는데 나는 발표보다 그 종이를 안 잃어버리는 게 더 중요해짐. 발표는 생각보다 안 망했고, 집에 와서 답장 쓰는데 첫 문장만 다섯 번 지움. 그 사람 다시 만나면 커피라도 사고 싶음. 아니 사실 우산 돌려주는 핑계로 한 번 더 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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